마음은 언제나 먼 곳을 떠돌고, 영혼은 늘 낯선 바다의 공기를 그리워한다.
 

글검색결과 [일본생활] : 3

  1. 2009/02/05 연수 보고서 제출 (1)
  2. 2007/12/25 12월 사진 정리
  3. 2007/11/15 이번 주의 중간 근황 (1)

한국에 가기 전에 연수보고서를 끝냈다. 일본인 튜터에게 먼저 보여줬더니 어색한 표현이 많다거나 형식을 이렇게 해야한다거나 해서, 완전히 새로 쓰듯이 고치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 괜찮겠죠, 하고 오케이가 떨어진 게 1월 1x일이었다. 동기들 중에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아직 채 완성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교수님에게 보여 드렸다. 한국 들어갑니다. 했더니 그럼 갔다 와서 고칠 거 있는지 알려 주겠다고, 진지하게 읽어 보시겠다고 하셨다.

원래 내 지도교수는 '하시모토 료오헤이' 라는 교수였다. 교원 연수생의 입학식날, 다른 지도교수들은 명함을 건네면서 방 번호 정도 알려주는 게 보통인데, 이 분은 나를 데리고는 당신 연구실까지 데리고 가셨다. 교원 연수생은 처음 받는데 한국인 대학원생은 받은 적이 있다고, 교수실 벽에 하회탈이 걸려 있는 걸 가리키며 이야기 해주셨다. 그리고는 뭘 하고 싶은지 꼼꼼히 묻더니, 당장 다음 주부터 세미나에 참가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이긴 해도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다 나랑 같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원칙적으로는 첫학기는 일본어 연수의 과정으로 되어 있다. 모두다 일본어만 들었다. 초급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갖고 있는 사람까지.

세미나는 수요일 오후1시. 수요일 오전은 교원 연수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통 교양 수업이 있었다. 12시에 마치고 점심을 먹고, 12시 40분까지 교수 연구실로 달려갔다. 교양 수업이 늦게 마치거나 학식에서 줄을 오래 서거나 해서 40분이 넘어서 도착하면, 자네도 일본 문화에 적응을 해야지, 세미나는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는 게 일본에선 당연한 예의야, 하고 엄중히 꾸짖었다. 세미나에서 나온 문제들에 대학원생들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꼭 내게 물었다. 수학 용어가 일본어로 안 나와서 사전을 뒤져가며 버벅거리면서 대답하면 다행이고, 대답을 못하면 또 엄중하게 꾸짖었다. 저녁 7시, 때로는 9시 정도까지 세미나를 하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정말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고마운 일이었다. 대학원생과 똑같이 대우받았고, 똑같은 수준으로 '일본어로' 대답하기 위해서, 버둥거리며 준비하는 게 분명 내게는 도움이 되었을 테니까.

2월 초순, 1학기가 채 끝나지 않았을 때 교수님이 'OB회'에 나오라고 했다. 교수님이 가르쳤던 대학원생들 학부생들이 2월에 모이는 모임으로, 당 년도의 졸업생들의 논문 발표회장이기도 했다. 학부 졸업논문과 석사 논문을 발표하면, 오비생들이 질문을 하거나 지적을 하거나 했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듣고 났더니, 내년엔 자네도 발표하는 거야, 하셨다.

3월에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땐 고작 6개월 일본에 있었을 뿐인데 한국어가 제대로 안 나왔다. 그 때도 최종 연구보고서의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해서 한국에서도 낑낑거리고 일본어를 보고 있었으니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돌아와서 연구 계획서를 제출했더니, 막연하니까 다시 생각하라고 되돌아왔다. 일본어 공부도 더 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2학기째도 세미나는 수요일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일본어 공부가 모자란다고 혼난 덕에 유학생 센터의 일본어 수업도 계속 들었다. 그래도 이번 학기는 다른 사람들도 세미나에 들어가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가끔 교수님을 만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학기 전체에 교수님을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학부생 대상의 일본어 상급 수업을 들으니 나 외에는 모두 유학생이라고 해도 정식 학부생들이라, 일본에서의 체류가 다들 몇년씩이었다. 일본 어학원에서 공부한 학생들도 있어서였는지, 내 발음이 틀리면 항상 어딘가에서 웃음이 키득 터져나왔다. 교원연수생의 어학 수업은 2학기때부터는 필수가 아니기 때문에 안 들으면 그만이었지만, 세미나에서 일본어가 안 돼서 혼나는 걸 생각하면 그만둘 수도 없었다.  

한국보다야 힘들지 않다, 여기선 최소한 일주일 내내 밤 열시에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새벽같이 출근하지도 않는다. 주말이면 가고 싶은 거리를 걸을 수도 있었다. 공부하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 않은가. 가능하면 어학보다도 전공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으니, 교수님이 나를 대학원생과 동등하게, 일본인을 대하듯이 하는 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3학기 째에 교수님이 쓰러지셨다. 현직 교사의 연구회에 같이 참석해서, 지유가오카 역에서 교수님과 헤어졌었는데, '여기 꽤 괜찮은 곳이니까 조금 둘러보면 좋을 거야.' 웃으면서 전철 역으로 들어가시더니 그 날 밤에 쓰러지셨던 거다. 조치가 빨라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갑자기 지도 교수님이 바뀌었다. 수학 교육 전공 가운데서 가장 젊은 분이었다. 전 교수님에게 무슨 말씀을 들었었는지, 없어진 세미나 대신 자기 세미나에 참석하라셨다. 전 교수님처럼 엄하게 꾸짖는 타입이 아니라, 칭찬으로 사람들을  끌어가는 타입이었다. 새로운 교수님, 이케다 선생님의 밑에는 이미 중국인 유학생이 있었는데, 이 아가씨가 일본어가 서툴러서였는지, 아니면 교수님이 원래 칭찬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어서였는지 몰라도 항상 내게는 과분한 평가가 왔다.

그렇게 새로 만난 교수님 밑에서 연구 보고서를 써서 제출했더니.... 빨간 글씨가 1/3은 되어 보였다. 순서도 바꾸고 여기 뭘 넣고 여기는 여기랑은 보충 설명을 하고... 문자인지 암호문인지 알기 힘든 표기를 앞에 두고 교수님은 한참 수정할 부분을 이야기하더니, 마지막은 웃으면서 맺었다. 자네라면 별 거 아니니까. 아니 별 거 맞았다. 수정 작업은 또 새로 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3번째의  보고서를 쓰는 기분이었다. 튜터와 이야기하다가 또 수정이 들어갔다. 그래프를 새로 만들고, 완전히 한 챕터를 들어내고 새 챕터를 넣고, 몇 번이나 출력해서 또 고치고 고치고 나니 네 번째 보고서가 끝났다.

교수님께 어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사소한 단락 구분 정도의 수정이 남았지만 금방 끝났다. 최종 출력을 하러 유학생 컴퓨터실에 갔더니, 동기인 인도네시아 아가씨가 있었다. 인사를 했더니 보고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아, 이제 끝났어.] 웃으면서 말했더니 아가씨가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려? 난 벌써 끝났는데.] 그냥 웃으면서 [응 교수님하고 튜터하고 계속 의논해서 고쳐 쓰느라. 이제 완전히 끝났어.] 아가씨는 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교수님은 그냥 내가 다 쓰면 끝이랬는데.]

마침 프린트를 하고 있던 참이길래 출력물을 봤더니, 논문 형식은 커녕 대학 리포트 수준의 내용이었다. 내가 보는 것만으로도 잘못된 일본어도 보였다. 분량 규정은 페이지 수로 되어 있는데, 줄 간격을 두 배로 늘려서 실제 양은 분량 규정의 절반 정도인 셈이었다.

[교수님한테 안 보여도 되는거야?]
[응 괜찮다고 했어.]

하더니 이 아가씨가 날 보고 웃으면서 이런다.

[난 언니랑 달리 운이 좋거든. 난 항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생각해봤다. 이 아가씨에게는 내가 운이 나쁜 걸로 보이나본데, 실제로는 어떤가 하고. 물론 논문 형식을 갖추라고 하는 교수님 덕분에 남들보다 힘들게 쓴 거 사실이고, 3학기 내내 세미나 과제 하느라 남들보다 자유시간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물 여섯살에 처음으로 히라가나를 구경하게 되었을 때도, 2002년에 학원의 초급 일본어반 다니면서 언젠가는 교원연수생으로 일본에 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바랐을 때도, 내가 생각한 교원연수생 생활이라는 건 어떤 거였던가. 공부 하고 싶었고, 대학원 가고 싶었고, 일본어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역시, 나는 운이 나쁜 게 아닌 거다. 아니, 오히려 너무너무 운이 좋은 거다.

모레 토요일은 문제의 OB회에서 발표를 하게 된다. 파워포인트 자료는 오늘도 고칠 게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일단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일본 생활은 앞으로 7주 남았다.

2009/02/05 20:29 2009/02/05 20:29
2007/12/25 19:28 | 일본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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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인도네시아의 잇페 쨩과 한국인 교원연수생들과 함께 우에노에 갔었는데, 그 때의 점심입니다. 우치와 스시. 회전스시집이에요. 음식은 맛있었습니다. 계란말이는 130엔 정도였고, 500엔 정도면 토로를 먹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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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공원에는 이 때 은행나무가 한창 고운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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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공원 근처에는 박물관/미술관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뭉크 전을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마침 하고 있어서 잘 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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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보니 깜깜... 정원에는 이렇게 작은 전구로 장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참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실내의 멋진 그림들, 그리고 정성스럽게 장식되어 있는 정원.

그리고 최근?의 식사 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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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저녁. 양배추와 돼지고기를 같이 볶았습니다. 양배추는 반 개, 돼지고기는 55g. 중국식으로 달달 볶았는데 조금 오래 볶아서 양배추가 엄청 줄었지요. 맛있어서 1/3은 먹고 2/3은 냉동. 세 번에 걸쳐 다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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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무려 토로가 50% 세일중이라는 기적을 일으켜서, 750엔에 사온 슈퍼의 마구로. 와사비와 간장으로 밥과 먹었습니다. 미소시루와, 녹차, 밥. 호사스러운 저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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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의 저녁. 야채와 돼지고기를 졸였습니다. 버섯을 넣구요. 야채 졸임용으로 죽순, 우엉, 연근, 당근, 곤약 등을 넣어서 포장해서 파는데, 일본산과 중국산의 가격 차이는 2배. 야채만큼은 일단 일본산을 먹습니다. 그리고 기숙사에 상비해두는 표고버섯 (사진의 제일 작은, 까만 꼭지가 있는 것 같은 것. 탄 게 아니에요.)과 감자 등이랑 같이 간장/미림/고추가루/물엿 등으로 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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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대형 슈퍼체인 '다이에'의 주말 세일의 달. 18개의 생만두를 120엔에 팝니다. 사서 냉동고에 넣어 두고, 두 번에 걸쳐서 구워 먹었습니다. 찍는 건 역시 한국식. 간장/식초/고추가루. 달군 프라이팬에다 만두와 물 150cc를 함께 넣고 익히는 것이 포인트. 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지만 물이 들어가는 쪽이 피가 쫄깃, 하고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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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은 현미 떡을 사다 왔었지요. 오븐 토스트에 5분 구우면 저렇게 부풀어 오릅니다. 간장에 찍는다거나 해서 먹기 때문에 아무 맛도 없습니다만, 현미라 그런지 조금 고소하더라구요. 오븐 토스트에 구운 상태에서 가츠오부시 장국에 말아 볼까 고민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떡국이 참 먹고 싶은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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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잘 먹고 있는 명란젓 스파게티. 스파게티면과 마른 표고 버섯을 함께 삶은 후, 기성품의 명란젓 소스를 올리고 김가루를 뿌리고 섞으면 완성. 의외로 맛있습니다. 면을 즐기는 일본인의 기호에 잘 맞는 게 명란젓 스파게티가 아닐까 싶네요. 게다가 쌉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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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여서, 큰 맘 먹고 동네 '후지야'에서 조각 케익을 사갖고 왔어요. 1조각 350엔. 평소엔 딸기 케익도 여러 종류 있는데 역시 크리스마스의 한정이어서 풀사이즈 케익이 더 늘어난만큼 조각 케익의 종류는 줄었더군요. 그래도 여기의 케익은 크림이 달지 않고 빵이 촉촉해서 맛있습니다.

어머니 환갑때도 따로 떨어져서, 전화 겨우 한 번 드리는 것밖에 못한 불효의 생활입니다.

그래도 제대로 건강하게 살고 있답니다.

2007/12/25 19:28 2007/12/2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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