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성도->인천->부산
8시 30분 비행기의 체크인을 위해서 5시 정도에 일어나, 샤워하고 마지막으로 짐 정리를 하고 택시를 잡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차 종류나 가벼운 선물용 물건들을 제외하면 거의 쇼핑을 하지 않아서, 9킬로로 출발했던 짐이 9.5킬로 정도로밖에 늘지 않았다. 조나다를 짐에서 빼내긴 했지만 대신 여행 가이드북이 들어갔으니 실제 쇼핑 무게가 1킬로가 채 되지 않는 모양. 이것 저것 악세사리류나 가방이나 눈에 꽤 들어오는 것은 있었지만 사려고 마음먹으면 또 뭔가가 아쉬워서 결국 사지 못한 것이다.
택시는 아침 시간이어서인지 거의 속도감에 아찔해 질 정도로 빨리 공항에 도착했지만 아직 체크인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세관 통과를 먼저 해야 하는 중국 항공사의 특성 대로 먼저 세관을 통과하고, 체크인을 하고 그 다음에 다시 출국 수속을 한다. 티벳이나 성도에서 거의 보지 못헀던 한국인들이 어디서 다 있었는지 단체 팀으로 여기 저기에서 모여들어 있었다. 공항은 조그맣지만 성도의 느낌과 마찬가지로 깔끔하다. 국제선보다 국내선 운항이 많은 곳이다보니 창구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버지 선물로 중국 전통주를 샀다. 내부에는 비행기 안에서 먹을 용도인지(우리 나라에 반입은 할 수 없다) 과일류나 액체류도 팔고 있지만, 가격은 바깥의 두 배이상. 과일 같은 경우는 10배에 가까운 폭리를 취하고 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서, 전통 공예품 같은 경우에 바깥보다 싸게 팔고 있는 경우도 있고(판다 기지에서 136위안이었던 티셔츠가 이 곳에서는 80위안), 바깥보다 훨씬 비싼 경우도 있다(중국 동전 지갑 같은 경우 밖에선 10~20 위안이면 살 수 있지만 내부에선 최소 30위안 이상이다). 그래도 전통 공예품 같은 경우 가격은 외부에 비해 비싸지만 세공 같은 경우가 정교한 것이 많아서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대부분이 한국인인 승객들은 역시 남초 호수에서 느긋히 상황을 파악하며 기다리던 중국인과는 달랐다. 언제쯤 출발을 하겠느냐는 항의에 언제 될지 알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승객들 사이에서는 분노가 폭발했다.

두 시간이 경과하자 사람들은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소리지르는 사람, 술이 취해서 욕설을 하는 사람, 한국인이라고 무시하는 거냐고 격양된 어조로 따지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 사진이나 비디오로 촬영을 하며 기록에 남기는 철두철미한 사람. 사람들의 반응이 저마다 제각각이다.

아침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는 항의가 먹혔는지 항공사측에서 비행기에 실었던 기내식을 꺼내 분배하기 시작했다. 급식을 먹듯이 줄을 서서, 기내식의 메인 요리와 콜라 한 캔을 받았다. 공항에서 기내식을 먹는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카레 같기도 하고 하야시 라이스 같기도 한 덮밥 요리였는데 비교적 깔끔하고 맛있었다. 중국의 밥은 찰기가 없이 푸슬하게 짓는 경우가 많은데 신기하게도 이 밥은 조금 질게 지어져있었다.
기내식도 다 먹고, 세 시간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포기한 듯이 기다리는 사람과, 단체행동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양분되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 비행기에서 내리지 말고 버티자는 일군의 파가 생겨났다. 나와 J는 아까 급하게 돌아보느라 못 본 안쪽의 면세점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첫번째 면세점보다 안쪽 면세점에 독특한 물건들이 많이 보였다. 옥으로 된 세공품들이 독특한 것이 많이 보이고, 중국의 다구들도 다양하게 보였다. 계속 한국에 머물 예정이면 하나쯤 구입하고 싶은 자사호가 눈에 띄었지만, 10월에 출국할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조그마한 자사호의 표면에 서예체로 조각이 되어 있는데 글씨가 날렵하고 유려한 모양이었다. 내 물건이 될 거라면 언젠가 다시 눈에 띄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한참 여기 저기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네 시간이 경과되었다. 그제야 안내방송이 나온다. 수리가 끝났으니 탑승하라는 안내다. 나는 작은 가방 하나 뿐이니 가볍게 타지만 수트케이스를 들고 탄 사람들은 짐을 여기 저기 옮기는 것도 큰 일이다. 승무원들이 탑승하는 승객들에게 일일히 쏘리 쏘리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화난 사람들에겐 별 효과가 없는 듯. 모든 사람이 탑승하고 기내방송으로 사과방송이 나오고 비행기는 이륙했다. 오후 세 시 사십분에 김포에서 김해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지만 이래서야 수가 없다. 자동 캔슬을 하고 가능한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월요일 오후니 김포에서 김해로 가는 편이 그렇게 붐비지는 않을 듯 하다. 어쩌면 인천에서 김해로 들어가는 편의 시간에 맞을 지도 모르겠다.

비행기에 타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자 2번째의 기내식이 나왔다. 지연 출발 덕분에 드물게도 두 번의 기내식을 받게 된 것이다. 치킨 덮밥에 스촨식의 고기볶음간장(같은 건데 뭐라고 불러야 되려나...)을 약간 뿌려 (사진의 검붉은 색) 먹으니 산뜻하고 맛있었다.

이번 여행은 이래 저래 계획에 차질이 많은 여행이었다. 고산병을 너무 가볍게 보고 체력의 한계를 뼈져리게 느꼈던 것이나, 매번 항공편마다 이륙이 지연된다거나 남초 호수로 가는 편이 낙석사고로 취소된다거나. 그래도 이런 돌발 사태들이 여행에서의 묘미기도 한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되뇌어본다.
인천에 무사히 도착한 후, 분노한 한국인 팀들은 '모두 일제히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는 겁니다!' 라고 주장했으나... 8시에 있을 국내선을 타지 않으면 (티켓팅부터 해야 하고) 오늘 안에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마음이 급하다. 게다가 의논이 따르지 않은 단체 행동은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안전 벨트 사인이 꺼지고 내려도 좋다는 신호가 떨어지자 나와 J는 무심히 일어나 비행기에서 내렸다. 등 뒤에서 "지금 내리는 건 다 중국인이야!" 라는 외침이 들렸다. 아. 나 중국인이었던가. 공항으로 들어가는 셔틀 버스 1대가 찰 정도로 승객이 내렸는데, 생각보다는 한국인도 많이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김해 공항으로 들어가는 국내선 티켓팅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첫 식사. 조선호텔 직영 식당가에서 그나마 가격이 덜 비싼 편인 돼지고기 김치 돌판 밥을 시켰다.

이렇게 김치 색이 예쁠수가. 김치는 하늘이 내린 음식이었던 거구나.


몇 년 전 상해, 항주, 소주, 북경에 왔던 여행을 생각해보면 그간 중국은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어쩌면 중국이 변한 게 아니라 성도라는 지역의 특수성일지도 모르지만, 지난 번에 느꼈던 경직성은 훨씬 줄어들고 비교적 원만하게 관광객을 상대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짧은 3일간의 일정이긴 했지만 라싸에서의 며칠간은 꿈결같은 환상으로 미화되어 있던 티벳에 대한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할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자기의 나라를 잃은 티베탄들의 표정이 신앙으로 가득한 것을 보며, 나는 때로 분개했고 때로 조금 경건해졌다. 그리고 만약 실제 티벳이 독립을 획득하게 된다면, 그 이후의 티벳 모습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해졌다. 이대로 중국의 지배가 이어진다면 티벳은 점점 중국화되고 티베탄들은 한족의 풍습에 익숙해지며 서구 문물에 길들여지게 되겠지만.
19시간의 열차 여행도 했으니 48시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도전했던 장기간 기차 여행에서의 교훈도 생각해본다. 물론 그 동안의 시간은 싹싹하고 붙임성있던 티베탄 소년 소녀들을 보고 놀란 시간이기도 했고, 마치 오래 전 우리 나라의 기차안을 연상시키는 담배 연기 자욱한 실내, 지저분한 차내의 모습에 스스로를 되돌아본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매번 여행을 마칠 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다시 좀 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이 곳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좀 더 고산증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고, 유리창 너머가 아닌 이 두 눈 앞에서 곧바로 하늘과 호수가 맞닿아 있던 남초 호수를 보고 싶다는 생각. 미처 보지 못한 티벳의 외곽지역이나 라싸 근교의 유적지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 중국화 되지 않은 티벳을 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중국 국내에서 관광의 명소로 꼽힌다는 성도를 찬찬히 밟아가며 좀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 이것은 매번 여행에서 느끼는 목마름이다. 다른 곳을 여행하면 더 여행할 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늘어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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