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조각
문득 방 안에서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오른쪽 귀퉁이에 동그랗게 빛이 닿아 있었다. 낡은 블라인드를 내린 창의 블라인드 사이, 좁은 사이로 들어온 빛이 천장에 동그랗게 맺혀 있었다. 그 순간 왈칵 눈물이 솟았다. 내가 원하는 건 저런 조그마한 빛이다. 어딘가에는 밝은 무언가가 있다는 작은 희망, 누군가가 바라보지 않아도 틈새로 스며들어와 기다리고 있는 작은 빛.
단절된 공간
문득문득 사무치게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설움의 정체란, 몇십년 전 기억하지도 못하는 유년 시절부터 줄곧 계속된 마음의 상처다. 나이를 먹고 철이 들고 울음을 참는 법을 배우고 타인 앞에서 울지 않는 법을 배우고 나면서 상처는 깊이 깊이 봉인되었어도 불현듯 어느 순간 몇십년의 설움이 저 깊은 곳에서 꼬리를 들곤 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얼굴에 그리고 조용히 천천히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든다. 타인과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는 안도감을 느끼면 수 초도 걸리지 않아 참았던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하나의 사건이 아닌 오랫동안 묵어왔던 감정을 한동안 쏟아부어도 깊이 봉인된 말들을 밖으로 꺼내지는 않아서 나는 다시 공개된 장소로 나온다. 얼굴에 다시 외부를 향한 표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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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쇠고기말이밥, 김치를 넣은 청국장, 손으로 만 김치김밥, 오이지무침, 더덕 고추장 구이. 그리운 것은 항상 생생하면서도 아득하니 멀다. 처음 산 LP판을 개봉할 때의 옅은 냄새, 레코드판이 휘어졌을 떄의 당혹감, 늘어난 테이프의 뒤틀린 음색을 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 같은 것이 그런 느낌과 닮았을까. 나는 머리카락을 말리려 켜놓은 선풍기 바람 앞에서 문득 내가 어렸을 떄부터 시간 속에 버리고, 혹은 잊어버리고 온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길고 복잡한 터널 속에 남겨둔 것들은 다시 거슬러 되돌아가 찾을 수 없기 때문인지, 그만큼 더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0.
그 사람을 말하자고 마음 먹으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그 사람의 짧게 자른 앞머리라든가 조금 내려온 안경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그 사람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주던 Happy birthday 노래라든가 그가 내게 선물한 크리스탈 열쇠고리 같은 것들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렇구나 하고 떠올리게 되곤 하는 겁니다. 햇빛에 비춰지면 반짝거리며 태양의 잔해인 듯이 빛나던 새 모양의 열쇠고리. 나는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된 사실을 그 열쇠고리 앞에서 중얼거립니다. 미안해요, 오빠. 사실 나, 새 포비아가 있어. 승오 오빠는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열쇠고리를 받았던 그 순간의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1.
인영이는 선이 가는 여자애였다. 잘 빗어내린 직모의 단발머리와 목섶까지 채운 티셔츠의 목선, 할랑하게 입은 트윌 면바지. 인영이는 내가 남겨 두고 온 80년대의 느낌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인영이 풀을 먹인 새하얀 칼라에 진감색 재킷을 입은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실제 그 교복이야 80년대 초반에 이미 사라졌고 인영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미국 아이비리그의 교복을 닮은 체크무늬 넥타이의 블레이져를 입었었다. 나와 인영은 이웃 학교를 다녔다.
인영이가 내게 항상 과거의 편린처럼 느껴졌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면 인영이 내게 입을 달싹이면서도 속으로 삼켰던 말들이 인영을 과거의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는 생각을 한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인영에게는, 나도 마찬가지지만, 최루탄 연기 자욱한 대학 캠퍼스가 드문 일이었다. 시대에 짓눌린다는 것은 민주화라든지 자유라든지 하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아이들 과외자리를 잘리지 않을까라든가 내년 학비가 얼마나 오를까라는 주제가 더 중요했다.
인영은 휠라 백팩을 매고 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었다. 일주일 중 4일을 과외 아르바이트로 보냈고 주일이면 교회에 갔다. 포켓볼, 재즈댄스, 배낭여행, 90년대 대학에 번져있던 모든 것에서 비켜서서, 인영은 그렇게 있었다. 그 흔한 동아리활동과도 무관한 대학 중앙도서관 3층 열람실 구석자리에서 인영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다.
0.
그랬네요. 나는 그를, 승오 오빠를 만났을 때 스물 세 살이었습니다. 오빠는 군대를 제대하고 4학년으로 복학한, 이상한 사람이었죠. 26개월의 군복무가 아닌 18개월간의 방위 근무 동안 승오 오빠는 자신의 입학동기들과 자주 연락을 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원래 선배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못 돼요. 하나씩 빠져나가는 남자 동기들의 이름도 내게는 전화번호부에서 넘쳐나는 누군가의 이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내가 2학년 때 군대에 갔다는 선배 이름을, 그 얼굴을 알고 있을 리가 없지요. 그는 그런데도 내가 당연히 자신의 이름을 알아야 하는 듯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삐삐 번호를 건넸습니다. 당연히 내가 내 번호를 알려 줄 거라 생각한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작년 과 회지에도 실려 있는데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요. 그는 화가 난 듯 보였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나와 참 많은 수업이 겹쳐지더군요. 나는 우리 과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체육과나 경영학과의 과목들을 듣지 않고 사회학과나 심리학과의 수업을 즐겨 들었습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아요. 성의 사회학이니, 구조주의 심리학이니 하는 것들. 자유선택과목으로 다른 전공을 듣는 학생 중에 수학과 학생은 처음이란 말이 내게는 그리 새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오고 나니 그도 그렇더군요. 그는 항상 교실 뒷자리에 앉는 나와는 달리 앞에 앉아, 이따금 졸다 교수님께 혼나는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트 한 번 내게 빌리지 않았던.
쇠고기말이밥, 김치를 넣은 청국장, 손으로 만 김치김밥, 오이지무침, 더덕 고추장 구이. 그리운 것은 항상 생생하면서도 아득하니 멀다. 처음 산 LP판을 개봉할 때의 옅은 냄새, 레코드판이 휘어졌을 떄의 당혹감, 늘어난 테이프의 뒤틀린 음색을 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 같은 것이 그런 느낌과 닮았을까. 나는 머리카락을 말리려 켜놓은 선풍기 바람 앞에서 문득 내가 어렸을 떄부터 시간 속에 버리고, 혹은 잊어버리고 온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길고 복잡한 터널 속에 남겨둔 것들은 다시 거슬러 되돌아가 찾을 수 없기 때문인지, 그만큼 더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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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말하자고 마음 먹으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그 사람의 짧게 자른 앞머리라든가 조금 내려온 안경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그 사람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주던 Happy birthday 노래라든가 그가 내게 선물한 크리스탈 열쇠고리 같은 것들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렇구나 하고 떠올리게 되곤 하는 겁니다. 햇빛에 비춰지면 반짝거리며 태양의 잔해인 듯이 빛나던 새 모양의 열쇠고리. 나는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된 사실을 그 열쇠고리 앞에서 중얼거립니다. 미안해요, 오빠. 사실 나, 새 포비아가 있어. 승오 오빠는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열쇠고리를 받았던 그 순간의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1.
인영이는 선이 가는 여자애였다. 잘 빗어내린 직모의 단발머리와 목섶까지 채운 티셔츠의 목선, 할랑하게 입은 트윌 면바지. 인영이는 내가 남겨 두고 온 80년대의 느낌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인영이 풀을 먹인 새하얀 칼라에 진감색 재킷을 입은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실제 그 교복이야 80년대 초반에 이미 사라졌고 인영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미국 아이비리그의 교복을 닮은 체크무늬 넥타이의 블레이져를 입었었다. 나와 인영은 이웃 학교를 다녔다.
인영이가 내게 항상 과거의 편린처럼 느껴졌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면 인영이 내게 입을 달싹이면서도 속으로 삼켰던 말들이 인영을 과거의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는 생각을 한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인영에게는, 나도 마찬가지지만, 최루탄 연기 자욱한 대학 캠퍼스가 드문 일이었다. 시대에 짓눌린다는 것은 민주화라든지 자유라든지 하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아이들 과외자리를 잘리지 않을까라든가 내년 학비가 얼마나 오를까라는 주제가 더 중요했다.
인영은 휠라 백팩을 매고 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었다. 일주일 중 4일을 과외 아르바이트로 보냈고 주일이면 교회에 갔다. 포켓볼, 재즈댄스, 배낭여행, 90년대 대학에 번져있던 모든 것에서 비켜서서, 인영은 그렇게 있었다. 그 흔한 동아리활동과도 무관한 대학 중앙도서관 3층 열람실 구석자리에서 인영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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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네요. 나는 그를, 승오 오빠를 만났을 때 스물 세 살이었습니다. 오빠는 군대를 제대하고 4학년으로 복학한, 이상한 사람이었죠. 26개월의 군복무가 아닌 18개월간의 방위 근무 동안 승오 오빠는 자신의 입학동기들과 자주 연락을 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원래 선배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못 돼요. 하나씩 빠져나가는 남자 동기들의 이름도 내게는 전화번호부에서 넘쳐나는 누군가의 이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내가 2학년 때 군대에 갔다는 선배 이름을, 그 얼굴을 알고 있을 리가 없지요. 그는 그런데도 내가 당연히 자신의 이름을 알아야 하는 듯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삐삐 번호를 건넸습니다. 당연히 내가 내 번호를 알려 줄 거라 생각한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작년 과 회지에도 실려 있는데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요. 그는 화가 난 듯 보였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나와 참 많은 수업이 겹쳐지더군요. 나는 우리 과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체육과나 경영학과의 과목들을 듣지 않고 사회학과나 심리학과의 수업을 즐겨 들었습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아요. 성의 사회학이니, 구조주의 심리학이니 하는 것들. 자유선택과목으로 다른 전공을 듣는 학생 중에 수학과 학생은 처음이란 말이 내게는 그리 새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오고 나니 그도 그렇더군요. 그는 항상 교실 뒷자리에 앉는 나와는 달리 앞에 앉아, 이따금 졸다 교수님께 혼나는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트 한 번 내게 빌리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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