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안 올 줄은 몰랐다.
언제부터였더라. 문부성 교원 연수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무엇 때문에 가고 싶다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일본어도 전혀 못 하면서 허황된 꿈처럼 막연하게 바랐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학교의 업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줄 도피처처럼 그렇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처럼.
새로 들어간 대학에서 일본어를 처음 배웠다. 1년간이라고 해도 학원으로 다지면 두어달 다는 것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히라가나를 못 읽었다. 한자까지는 엄두도 못냈다. 중학교에 근무하면서 밤에는 대학을 다닌 생활 속에서 일본어 학원을 다닐 여유는 없었다.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잊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을 땐 확실히 일본어를 못 했던 때다. 2002년에 공업계 고등학교로 발령이 나면서 학원을 잠시 다녔다. 자신이 1년간 공부한 게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고, 두 달 수업이 지나자 학원을 더 이상 가지 않았다.
2005년에 EBS일본어 회화를 듣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랬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남들에게 말은 안했지만 계속 교원 연수생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혼자 살고 싶다는 기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기분, 어린애같은 동경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나보다. 현실은 너무 아팠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단지 취미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것처럼, 줄곧 이어폰으로 강의를 들었다.
2005년 12월, 2급 시험. 어렵다고 생각했더니 의외로 합격. 생각해보면 60점 이상이면 합격인 거니까, 모든 문제를 다 정확하게 풀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였다. 2006년에 1급을 치기로 했다. 사람들이 어이 없어 하더라. 몇 년 전만해도 히라가나도 못 읽는 애가 뭔 소리야 싶었나보다. 일본어 못해서 다른 사람들이 일본어로 농담 따먹기 할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 있던 애가 뭔 욕심이야 싶었나보다.
2007년 2월에 교원 연수 시험을 쳤다. 영어가 어려워서 떨어진다면 영어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부산 예비 심사에 붙었다. 불합격한 사람들이 교육청에 항의 방문도 했다고 했다. 괜히 내가 뭐 잘못한 것 같아서, 이러고 서울의 본심사에 불합격하면 두고 두고 욕먹을 거 같아서, 긴장하면서 본심사의 시험을 쳤다.
면접시험 대상자 안에 들었더니 학습 계획서를 쓰라고 하더라. 벅벅거리며 친구 붙잡고 물어보고 사전 몇 번이나 뒤지면서 써 갔더니, 지도 교수님 찾아가서 써 온 사람부터 번역기 돌려서 그대로 붙인 사람까지 정말 천차 만별이더라. 면접 갔더니 일본어로 말할 수 있겠냐 물었다. 자신 없는데 그러겠다고 했다. 면접 치고 났더니 어쩐지 붙을 것 같았다. 뭔 자신감이었을까. 그래도 붙긴 붙더라.
정신없이 준비하고 출국, 일본에 건너와서 가볍게 우울증 비슷한 것도 겪었다. 생각보다 일본어가 안 통해서,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 비슷한 문제는 항상 일어나는 거라서, 그래서 그랬나보다. 출국해서 혼자 살기만 하면, 일상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그곳이 낙원일 줄 알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환경이 변하면 자신이 적응하든지 아니면 도태될 뿐이다.
지금 방에 이사 와서 꼭 여섯달. 멍하니 TV를 보고 있다가, 내일 하는 특집 프로의 광고가 나왔다. 밤 10시. 집에 들어가면 오후 4시 정도일테니 볼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제 이 곳이 일상이 되어 있나보다. 역에서 내려 도보 15분. 슈퍼에서 장을 보고 약국에서 세제를 사고, 돌아와 방 안에서 TV를 켜놓고 무언가를 하는 지금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렸다.
먼저 귀국한 A가, 문득 도큐한즈에 들러야지, 하고 생각했단다. 한국의 일상에 일본의 일상이 섞여서 오는 착각이다. 나도 그런가보다.
나도 돌아가면, 구석구석 먼지를 턴 이 방이 그리워 질 거다. 6개월간의 일상이 더이상 일상이 아니라는 것에 가끔은 화들짝 놀라기도 할 것이다. 책상 옆에 TV가 있고 책상 옆에 책장, 그 옆에 벽장이 있는 이 방에 있는 듯이, 잠에서 깨자마자 더듬거리며 머리맡의 전등 스위치를 켜려고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다이칸야마의 킬 훼봉의 타르트가, 미도리의 스시가, 시음 신청으로 마시는 루피시아 할인 매장의 차가, 이제는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 낯설기도 할 것이다.
4월 1일, 거짓말처럼 새로운 일상으로 나는 다시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하겠지. 정든 2학년들은 이미 졸업해서 만 19살이 되었고, 그 때 쬐그맣던 1학년들은 이제 3학년이 되어 있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잠시 떨어져 있었던 일상으로 돌아가면, 내가 없는 동안에도 그 곳의 톱니바퀴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이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내고 싶지 않은걸.
오키나와 여행을 같이 한 카나코 상이 말했다. 사일간의 여행과 오늘, 그 짧은 인연에도 꼭 다시 만나자고 조금 눈을 붉히며. 꼭 부산에 갈 거니까. 이건 절대 혼네니까. 강조하면서 말하는 카나코 상에게 응응, 꼭 놀러와, 라고 대답했다.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걸.
카나코 상이 말했다.
꼭 다음주도 언니랑 만나서 책 이야기, 교수님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를 할 것만 같아요.
여기서 처음 만났으면서도 친해진 민경 씨가 말했다.
하지만 괜찮아. 인연이 여기서 끝날 리가 없으니까. 늘 가야할 길로 인도받았듯이, 다시 이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믿으니까.
낯선 곳에서 적응하면서, 결국 사람 사는 데서 겪는 고충도 겪어가면서, 그렇게 꿈같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그곳을 떠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 그리고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마음 한켠은 쓸쓸하구.
한 번 이어진 끈은 계속된다고 믿어. 한국으로 어서오세요. :3
다녀왔습니다-
이제 2주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좀 휑- 하고 그러네.
정신없이 바빠서 여유가 없는데도 잠시잠깐 비는 시간에 내가 여기 있는 게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