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언제나 먼 곳을 떠돌고, 영혼은 늘 낯선 바다의 공기를 그리워한다.
 

글검색결과 [2009/02] : 8

  1. 2009/02/28 북 오프의 쇼핑 목록
  2. 2009/02/28 ....지금 갖고 싶은 것
  3. 2009/02/22 모 작품의 팬들이면 알아보실... (3)
  4. 2009/02/19 제 6회 유학생문학상 수상식 (1)
  5. 2009/02/17 도쿄 에도 건축 공원 (東京江戸たてもの園) (1)
  6. 2009/02/16 아타미 일일 여행
  7. 2009/02/08 논문발표회
  8. 2009/02/05 연수 보고서 제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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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上弘美 
 おめでとう
 蛇を踏む
 溺れる
 神様
 いとしい

よしもとばなな
 バリ夢日記-世界の旅①
 SLY-世界の旅②
 虹-世界の旅④

柳美里
 仮面の国
 女学生の友

夏目漱石
 こころ

リリーフランキー
 東京タワーオカンとボクと時々、オト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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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엔 : 8권
300엔 : 2권 (카와카미 히로미: 카미사마, 이토시이)
250엔 : 1권 (카와카미 히로미: 오보레루)

1795엔.

2009/02/28 23:00 2009/02/28 23:00

RNO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RNO가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교항곡 5번 혹은 9번
.....

그리고 또 RNO의 그 밖의 것들 ..

여기 와서 가능하면 안 가려고 했던 음반 가게를 갔다.
가능하면 안 가려던 클래식 코너를 갔다.
충동적으로 차이코프스키를 찾고, 쇼스타코비치를 찾고, 라흐마니노프를 찾았다.
RNO 건 약속이나 한 듯 없더라. 묘하게도.
연주자별로 따로 분류되어있나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는데
아마 있었으면 고민 하다가 안 샀을지도 모르겠지만
없으니까 또 묘한 이 심정...

아파트로 돌아와 컴 앞에 앉아서 늦은 시간까지 있다가
인터넷에서 약간 뒤적뒤적거리다가
6월에 대전에 RNO의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은 줄곧 미술관이나 전시회나 박물관을 다니고 있는데
연주회만큼은 도통 잘 가기 힘들다. 공연은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내가 원할 때 있는 게 아니다.

사실 잘 모른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거라면 벌써 mp3p를 듣고 있지는 않겠지.
그냥 우연처럼 알게된 작곡가나 곡명이나, 연주자들을 기억할 뿐이고
그게 너무나 갖고 싶고 늘 듣고 싶다는 건 조금 사치스러운 호기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또 한 번은 갈 거 같고
다른 음반 가게에서 나는 또 열심히 러시아라는 철자를 찾겠지.

내일은 근처에 있는 북오프에 가 봐야겠다. 운이 좋아서 발견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여기서 사려고 했던 문고판 소설들을 찾아 봐야겠다.
한달 남은, 애틋한 여유.

2009/02/28 03:38 2009/02/28 03:38

다음 사진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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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인 답은 옛날 문구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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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건물의 내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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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가 될 숨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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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물입니다. 웅장한 저택처럼 생겼지만 '노렌' 이 수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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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물입니다. 의자가 나란히 있고.. 노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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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다른 건물의 마루입니다. (슬슬 힌트가 쉬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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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힌트.. 아직도 모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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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의 내부입니다.

정답은...

2009/02/22 00:09 2009/02/22 00:09

2008년 가을에 열렸던 제 6회 유학생 문학상 공모에서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응모작은 모두 114작품, 당선작 1명(시, 코스타리카) 우수상 1명(소설, 스리랑카) 장려상 4명(한국 2명, 이탈리아,  말레이지아)이었습니다.
오늘 오후 4시, 시상식장에 갔더니 장려상의 나머지 세 명은 모두 2번 이상 도전한 사람이라 (그 중 두 명은 전에도 수상했던 사람들), 서로 알아보기도 하고 그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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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온 것들입니다. 맨 가운데가 물론 상장. 맨 오른쪽이 벽면 달력, 그 옆의 봉투 붙은 것이 오키나와 3박4일 여행권입니다. 여행사는 아니고, 위원회의 분 중에 오키나와 류쿠 출신이 계셔서, 매년 초대하신다네요. 보통 가을에 가는데 이번에는 용케 3월에 가게 되어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봉투 받침처럼 보이는 건 오키나와 특산물 초코쿠키입니다.

상장 왼쪽 옆에는 역시 위원회의 분 가운데 카시오의 이사분이 계셔서, 협찬한 전자사전입니다. GW6900라는 모델인데 일본판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나오지 않았을 것 같네요. 일본의 대국어사전이 들어 있고, 한자 인식 터치판넬이 있어서 기뻤습니다. 한국 가면 전자사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그리고 상자 위에 은색은, 네임 패널입니다. 전자사전에 붙일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제6회 유학생문학상 장려상 구 한나리 2009.2.18.이라고 적혀 있습니다.(물론 카타카나와 한자로)

아래의 까만 상자는 군마의 명물 미즈누마 만쥬. 상자 위에 놓인 봉투는 상금 5만엔이 들어 있습니다. 그 옆의 그림은 위원회에 계신 판화 작가분이 주신 작품입니다.

소설로 뭔가 상 받은 건 10대 이후로 처음이네요... 아니 중학교 때 이후 처음이군요. 가장 최하위의 상이긴 하지만 심사위원 중의 한 분이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자기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말해 주어서 기뻤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게으르고 느긋하게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 들어 본 적 없던 칭찬이나 격려를 받을 때마다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조만간 유학생문학상 홈페이지에도 글이 실릴 예정이라고 하네요. 혹-시 개인적으로 관심 있으신 분은 검색으로 찾아보세요 (.)
2009/02/19 00:40 2009/02/19 00:40
2월 17일
코가네이공원 안에 있는 '도쿄 에도 건축 공원'에 갔습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했던 건물들이 이 곳의 건물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포스팅은 아래에 했습니다만.. 실은 애니메이션에 나오지 않은 건축물도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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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의 전시실이 현재 수리 작업 중이라서 옆문을 정문으로 사용중이더군요. 하늘이 사파이어빛으로 빚나는 좋은 날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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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운행 했다고 하는 미니 버스입니다. 드럼통을 펴서 만든 자동차구요. 앞모습을 보면 짚차를 개조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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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의 내부, 여탕 쪽입니다. 거울이 있는 벽을 중심으로 남탕과 여탕이 구별되어 있어서 재미있구요. 목욕탕 내부에 그림을 그려놓는 것이 예전 대중 목욕탕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오른쪽 위, 문틀에 붙어 있는 것은 '貴重品は必ず番台へお預け下さい’ 반다이는 목욕탕의 남탕과 여탕 입구 중앙의 높은 곳에 앉아 있는 관리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말로 하자면 '귀중품은 반드시 접수구에 맡기세요'가 되겠네요. 우리 나라 목욕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라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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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지붕을 얹은 민가입니다. 부엌 아궁이가 실외에 있는 형식으로, 우리 나라 정짓간이랑 닮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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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 중에는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도 간간히 보입니다. 물론 지금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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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건물로 된 거창한 민가. 부호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이 곳 격자 유리창의 복도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물명에서 등장했던 곳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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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봐도 꽤 현대적으로 지어져 있는 이 건물은 사진관 건물입니다. 내부의 촬영실이나 조명 장치를 보면 비교적 후기의 건물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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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역시 민가 건물인데, 이곳은 아궁이를 마루에 올렸더군요. 비슷한 시대의 건물이라도 불이 밖에 있기도 하고 안에 있기도 하고, 서양식의 건물도 있고... 에도 시대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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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 말을 매어 둔 곳일까 했는데, 창고라고 합니다. 벽도 없는데 무슨 창고인가 했더니, 지붕으로 보이는 곳이 창고더군요. 아래에 입구가 있어서, 지붕 아래에 곡식이나 야채 등을 보관했다고 합니다. 습기가 많은 일본에서는 유용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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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이런 건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던 서양풍의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실에는 카페트를 깔고 소파를 넣고, 업라이트 피아노도 있고요. 하지만 1층에는 다다미방도 있는, 일본과 서양의 절충식의 건물이 딱, 에도의 일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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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도 쓰였다고 하는 우체통과 파출소 건물. 우리 나라 일제 시대 배경의 극에서도 본 듯한 건물이 낯이 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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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공원의 종료 시간이 다 되어 나오니, 저물어가는 오후 해 아래에 매화가 만발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벚꽃도 좋지만, 저는 매화가 더 좋네요.
2009/02/17 20:13 2009/02/17 20:13

2월 16일.
아타미 지역을 잠시 다녀왔습니다. 도쿄에서는 한시간 반 정도 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카와사키에서도 그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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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미(熱海)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타미는 도쿄에서는 꽤 따뜻한 지역에 속합니다. 매화도 무척 빨리 피는 편이구요. 1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아타미에서는 매화 축제가 열립니다. 중심이 되는 곳은  바이엔(梅園)이라는 이름의 공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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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화는 어느새 끝물이었습니다. 3월 중순까지 축제이기 때문에 2월 하순 정도가 딱 좋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따뜻한 날씨가 며칠 일찍 찾아오면서 매화는 만개 시기를 벌써 지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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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엔에는 '인연의 집'이라는 정자가 있는 한국 정원이 있습니다. 아타미 지역은 영화 '청연'의 모델이었던 여류비행사 박경원씨가 비행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정원에는 박경원씨를 추모하는 작은 조형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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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씨의 역사적 의의는 일단 젖혀 두고, 일본 안에서 발견한 한국 건축물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의 담벼락은, 지붕은 참 따뜻한 느낌이 드네요.

한참 바이엔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버스 시간이 20분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아타미 성을 볼 생각이었습니다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아슬아슬해서, 그냥 바다를 보기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혼자 가볍게 떠나는 길이란 이래서 좋지요. 동행이 있었다면 다음 일정을 생각해서 발걸음을 재촉해 주었을 테니 또 달랐을 것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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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벽 해안을 볼 수 있다는 곳. 새파란 바다가 절벽 아래로 아찔하게 비춰옵니다만, 한국 정원 때문인지 한국의 풍경이 자꾸만 눈 앞에 어른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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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부산 태생이라, 바다를 보면 아련한 듯 차분한 듯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고향의 풍경을 본 듯한 느낌에 말문이 막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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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다는 어쩜 그렇게 부산의 태종대를 닮았는지요. 저 절벽 아래 잉크빛의 푸른 바다가, 바람을 받고 서 있는 나무가, 멀찍이 보이는 작은 배의 포물이, 고향의 바다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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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러 다시 내려오는 길, 웅장하게 천수각이 보입니다. 아타미 성의 천수각입니다. 시간이 맞았더라면 성곽을 제대로 보았을 테지만, 천수각 꼭대기의 금빛 샤치 두 마리까지 눈에 들어오니 이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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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던 아타미는 해외 여행 열풍과 함께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고 합니다. 버스 정류장 옆 산 허리에 스산하게 남은 텅 빈 건축물을 보면서 시대의 변화를 실감합니다.

한 달 조금 더, 고향의 바다를 볼 생각을 하면서, 나츠메 소세키를 읽으며 돌아왔습니다.

2009/02/16 19:48 2009/02/16 19:48
2009/02/08 04:31 | 일본유학

세미나 OB회의 논문 발표회가 무사히 끝났다.
30분간의 발표. 25분의 발표와 5분의 질문이었는데 엄청 버벅대는 바람에 30분 정도를 다 써버리고 말았다. 질문도 감상도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틀린 발음과 잘못된 표현만 머리에 빙글빙글 맴돌았다.

중국식당에으로 자리를 옮겨서, 한사람씩 인사를 하는 자리. 교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나는 아주 애매한 이방인이다. 작년에도 올해도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어색하고, 일본어도 서툴고, 안정되지 못하고 불편하다.

졸업식 전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신청해 놓았기 때문에 아마 오늘로서 세미나 팀들을 만나는 날은 마지막이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내가 소화49년생이라는 걸 모른채 아마도 30대 후반이겠지 라고 짐작만 하고 있는 학부생 대학원생들. 특별히 숨기려던 건 아니지만 실은 저들 사이에 나는 소화44년생 정도일지도 모르지.

줄곧 이 분위기가 부러웠다. 한동안 줄곧 그럴 것이다. 함께 대학 시절을 회상하고, 함께 자신이 하고 있는 지금의 일을 이야기하고, 또 앞으로의 장래를 들뜬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들.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헀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단지 그 현실로 돌아가는 게 무서워서일지도 모른다.

2009/02/08 04:31 2009/02/08 04:31

한국에 가기 전에 연수보고서를 끝냈다. 일본인 튜터에게 먼저 보여줬더니 어색한 표현이 많다거나 형식을 이렇게 해야한다거나 해서, 완전히 새로 쓰듯이 고치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 괜찮겠죠, 하고 오케이가 떨어진 게 1월 1x일이었다. 동기들 중에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아직 채 완성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교수님에게 보여 드렸다. 한국 들어갑니다. 했더니 그럼 갔다 와서 고칠 거 있는지 알려 주겠다고, 진지하게 읽어 보시겠다고 하셨다.

원래 내 지도교수는 '하시모토 료오헤이' 라는 교수였다. 교원 연수생의 입학식날, 다른 지도교수들은 명함을 건네면서 방 번호 정도 알려주는 게 보통인데, 이 분은 나를 데리고는 당신 연구실까지 데리고 가셨다. 교원 연수생은 처음 받는데 한국인 대학원생은 받은 적이 있다고, 교수실 벽에 하회탈이 걸려 있는 걸 가리키며 이야기 해주셨다. 그리고는 뭘 하고 싶은지 꼼꼼히 묻더니, 당장 다음 주부터 세미나에 참가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이긴 해도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다 나랑 같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원칙적으로는 첫학기는 일본어 연수의 과정으로 되어 있다. 모두다 일본어만 들었다. 초급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갖고 있는 사람까지.

세미나는 수요일 오후1시. 수요일 오전은 교원 연수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통 교양 수업이 있었다. 12시에 마치고 점심을 먹고, 12시 40분까지 교수 연구실로 달려갔다. 교양 수업이 늦게 마치거나 학식에서 줄을 오래 서거나 해서 40분이 넘어서 도착하면, 자네도 일본 문화에 적응을 해야지, 세미나는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는 게 일본에선 당연한 예의야, 하고 엄중히 꾸짖었다. 세미나에서 나온 문제들에 대학원생들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꼭 내게 물었다. 수학 용어가 일본어로 안 나와서 사전을 뒤져가며 버벅거리면서 대답하면 다행이고, 대답을 못하면 또 엄중하게 꾸짖었다. 저녁 7시, 때로는 9시 정도까지 세미나를 하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정말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고마운 일이었다. 대학원생과 똑같이 대우받았고, 똑같은 수준으로 '일본어로' 대답하기 위해서, 버둥거리며 준비하는 게 분명 내게는 도움이 되었을 테니까.

2월 초순, 1학기가 채 끝나지 않았을 때 교수님이 'OB회'에 나오라고 했다. 교수님이 가르쳤던 대학원생들 학부생들이 2월에 모이는 모임으로, 당 년도의 졸업생들의 논문 발표회장이기도 했다. 학부 졸업논문과 석사 논문을 발표하면, 오비생들이 질문을 하거나 지적을 하거나 했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듣고 났더니, 내년엔 자네도 발표하는 거야, 하셨다.

3월에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땐 고작 6개월 일본에 있었을 뿐인데 한국어가 제대로 안 나왔다. 그 때도 최종 연구보고서의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해서 한국에서도 낑낑거리고 일본어를 보고 있었으니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돌아와서 연구 계획서를 제출했더니, 막연하니까 다시 생각하라고 되돌아왔다. 일본어 공부도 더 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2학기째도 세미나는 수요일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일본어 공부가 모자란다고 혼난 덕에 유학생 센터의 일본어 수업도 계속 들었다. 그래도 이번 학기는 다른 사람들도 세미나에 들어가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가끔 교수님을 만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학기 전체에 교수님을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학부생 대상의 일본어 상급 수업을 들으니 나 외에는 모두 유학생이라고 해도 정식 학부생들이라, 일본에서의 체류가 다들 몇년씩이었다. 일본 어학원에서 공부한 학생들도 있어서였는지, 내 발음이 틀리면 항상 어딘가에서 웃음이 키득 터져나왔다. 교원연수생의 어학 수업은 2학기때부터는 필수가 아니기 때문에 안 들으면 그만이었지만, 세미나에서 일본어가 안 돼서 혼나는 걸 생각하면 그만둘 수도 없었다.  

한국보다야 힘들지 않다, 여기선 최소한 일주일 내내 밤 열시에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새벽같이 출근하지도 않는다. 주말이면 가고 싶은 거리를 걸을 수도 있었다. 공부하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 않은가. 가능하면 어학보다도 전공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으니, 교수님이 나를 대학원생과 동등하게, 일본인을 대하듯이 하는 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3학기 째에 교수님이 쓰러지셨다. 현직 교사의 연구회에 같이 참석해서, 지유가오카 역에서 교수님과 헤어졌었는데, '여기 꽤 괜찮은 곳이니까 조금 둘러보면 좋을 거야.' 웃으면서 전철 역으로 들어가시더니 그 날 밤에 쓰러지셨던 거다. 조치가 빨라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갑자기 지도 교수님이 바뀌었다. 수학 교육 전공 가운데서 가장 젊은 분이었다. 전 교수님에게 무슨 말씀을 들었었는지, 없어진 세미나 대신 자기 세미나에 참석하라셨다. 전 교수님처럼 엄하게 꾸짖는 타입이 아니라, 칭찬으로 사람들을  끌어가는 타입이었다. 새로운 교수님, 이케다 선생님의 밑에는 이미 중국인 유학생이 있었는데, 이 아가씨가 일본어가 서툴러서였는지, 아니면 교수님이 원래 칭찬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어서였는지 몰라도 항상 내게는 과분한 평가가 왔다.

그렇게 새로 만난 교수님 밑에서 연구 보고서를 써서 제출했더니.... 빨간 글씨가 1/3은 되어 보였다. 순서도 바꾸고 여기 뭘 넣고 여기는 여기랑은 보충 설명을 하고... 문자인지 암호문인지 알기 힘든 표기를 앞에 두고 교수님은 한참 수정할 부분을 이야기하더니, 마지막은 웃으면서 맺었다. 자네라면 별 거 아니니까. 아니 별 거 맞았다. 수정 작업은 또 새로 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3번째의  보고서를 쓰는 기분이었다. 튜터와 이야기하다가 또 수정이 들어갔다. 그래프를 새로 만들고, 완전히 한 챕터를 들어내고 새 챕터를 넣고, 몇 번이나 출력해서 또 고치고 고치고 나니 네 번째 보고서가 끝났다.

교수님께 어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사소한 단락 구분 정도의 수정이 남았지만 금방 끝났다. 최종 출력을 하러 유학생 컴퓨터실에 갔더니, 동기인 인도네시아 아가씨가 있었다. 인사를 했더니 보고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아, 이제 끝났어.] 웃으면서 말했더니 아가씨가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려? 난 벌써 끝났는데.] 그냥 웃으면서 [응 교수님하고 튜터하고 계속 의논해서 고쳐 쓰느라. 이제 완전히 끝났어.] 아가씨는 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교수님은 그냥 내가 다 쓰면 끝이랬는데.]

마침 프린트를 하고 있던 참이길래 출력물을 봤더니, 논문 형식은 커녕 대학 리포트 수준의 내용이었다. 내가 보는 것만으로도 잘못된 일본어도 보였다. 분량 규정은 페이지 수로 되어 있는데, 줄 간격을 두 배로 늘려서 실제 양은 분량 규정의 절반 정도인 셈이었다.

[교수님한테 안 보여도 되는거야?]
[응 괜찮다고 했어.]

하더니 이 아가씨가 날 보고 웃으면서 이런다.

[난 언니랑 달리 운이 좋거든. 난 항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생각해봤다. 이 아가씨에게는 내가 운이 나쁜 걸로 보이나본데, 실제로는 어떤가 하고. 물론 논문 형식을 갖추라고 하는 교수님 덕분에 남들보다 힘들게 쓴 거 사실이고, 3학기 내내 세미나 과제 하느라 남들보다 자유시간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물 여섯살에 처음으로 히라가나를 구경하게 되었을 때도, 2002년에 학원의 초급 일본어반 다니면서 언젠가는 교원연수생으로 일본에 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바랐을 때도, 내가 생각한 교원연수생 생활이라는 건 어떤 거였던가. 공부 하고 싶었고, 대학원 가고 싶었고, 일본어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역시, 나는 운이 나쁜 게 아닌 거다. 아니, 오히려 너무너무 운이 좋은 거다.

모레 토요일은 문제의 OB회에서 발표를 하게 된다. 파워포인트 자료는 오늘도 고칠 게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일단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일본 생활은 앞으로 7주 남았다.

2009/02/05 20:29 2009/02/0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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