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언제나 먼 곳을 떠돌고, 영혼은 늘 낯선 바다의 공기를 그리워한다.
 

더불어 숲 - 신용복

같은 곳을 가더라도 다른 생각으로 깊이 있는 사고를 이끌어 내는 사람이 있다. 선생은 그런 분이다. 시대의 변혁을 온 몸으로 겪으며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온 분의 사고를 내가 다 이해한다는 것은 오만이다. 내가 가 본 곳, 혹은 내가 가 보지 않은 곳에서 우리 나라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신 선생의 감정에 동조했다가, 잠시 책을 덮었다가를 반복했다. 새로 펴내면서 고칠 곳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최소한으로 고쳤다고 말씀하시는 그 마음이 가장 와 닿았다. 새로 쓰면서 과거를 다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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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타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소련의 혁명기를 이야기하던 알렉시예비치가 이번에는 1990년대 개혁기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내가 고등학교-대학교를 지나왔던 그 시절은, 내가 변화와 진보를 믿고 있던 시기였다. 세상은 미친 듯이 변했고 절대악이라 생각했던 소련이 혁신을 외치다가 러시아로 무너졌고. 그 때는 거짓된 사회주의가 무너졌고 진짜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시기에 지금의 촛불처럼, 1987년처럼, 변화의 열정을 가지고 뛰어나와 소리쳤던 사람들의 열망이 어떻게 소수의 특권으로 이용당했는지, 시민혁명이 어떻게 악용되었는지가 너무 절절하고 아프다. 제대로 된 진보는 어떻게 해야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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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 - 다키모리 고토 (알라딘도서관)

너무나 일본스러운 따뜻한 이야기. 드라마로 만들면 딱 일본드라마구나 싶을. 때로는 억지스러운 정도의 우연과 의도가 겹쳐져서 딱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하게 끝난다. 어쩌면 억지스럽다고 고개를 저을 수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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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것 행복할 것 - 홍인혜 (알라딘도서관)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혼자서 살아보는 경험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본에서 자취했던 1년 반동안 많은 생각이 바뀌었던 것처럼. 사람이 자신 하나를 책임지는 데 어느 정도의 비용과 수고가 들어가는지, 누군가와 그 책임을 공동으로 맡았다는 것만으로 부담은 생각보다도 훨씬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여자 혼자가 살아가면서 겪는, 겪을 필요가 없는 공포도 생생하고 예전에 자취할 때 생각도 나서 좋았다.

2017/01/03 09:54 2017/01/03 09:54

나의 만년필 - 박완서

70년대 80년대의 수필들을 가까이 읽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기로 했다. 박완서 선생님의 연세를 생각하면 그 시절의 부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소설에서 보았던 선생님의 소녀다운, 청춘의 감수성을 수필에서 그대로 기대해서는 안 되는 거려니. 소박한 절약정신이나 사치스러운 부인네들에 대한 멸시도 지금의 마음으로 비판해서는 안 되는 거려니. 다만 '나의 만년필'에서 '좋은 글 써 줘요'라고 받은 파카45 만년필이 무거워서 쓰지 못하는 그 마음은 내가 알고 있던 그 선생님의 마음이어서 반가웠다. 일단은 다른 수필집은 읽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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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실 - 김별아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화자의 대사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역사물에서는 그 시대에 걸맞은 고풍스러운 글을 쓰게 마련인데, 어쩐지 20세기 초반 일제 시대의 말투는 현대적으로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의 말투라고 쓴 탄실이나 주인공 주변의 말투가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나 소녀적이어서 몰입이 어려웠다. 탄실에 주목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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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 다자이오사무

인간실격의 다자이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달려라 메로스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싶다. 다자이의 여성 화자의 소설들은 여성 작가로 보일 만큼 여성의 감수성에 가깝다. 놀랍다. '탄실'과 아무래도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소설에서의 말투는 탄실보다는 현대적인 대화체에 가깝다. 적당히 시대감을 갖고 있으나 지나치게 문어체적이지 않다. 번역가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다자이의 문장과 다자이의 감수성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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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 김훈

예전에는 여성적으로 느끼기도 했었던 김훈의 문체가 내 느낌이 달라진 것인지 글투가 달라진 것인지 이번에는 꽤나 거슬릴 정도로 남성적이다. 강과 바다를 둘러싼 인물들 세 사람의 얽히고 얽히는 감성이 생생하긴 한데, 이 사람이 그려내는 여성은 정말 그림으로 그려낸 듯이 현실성이 없다. 남자가 바라보는 여성이다. 남자들의 생생함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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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아쓰시 작품집

한문 어투의 문장. 역사적인 신화와 역사를 재해석하는 이야기꾼. 젊어서 요절한 천재. 사소설에서 보여주는 날카로운 감정과 신화적인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무심함이 전혀 달라서 같은 작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사소설은 지나치게 사적이어서, 작가의 수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작가와 동의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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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있다 - 프리드릭 베크만

이 작가 너무 좋다. 정말로 내가 싫어하는 인간형을 들고 오면서도, 그 사람을 이해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재주라니. 하지만 생각해보면 브릿마리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가장 이해하고 보듬어야 하는 과거의 사람이다.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고, 오직 남을 위해서만 살아왔던 이가 진심으로 인정받고 사랑받게 되는 기적의 순간을 보고 있으면 누구에게든 감동적인 순간이 생길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2016/12/29 11:09 2016/12/2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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