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언제나 먼 곳을 떠돌고, 영혼은 늘 낯선 바다의 공기를 그리워한다.
 

5월 24일 목요일. 제 1일. 부산 -> 하카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안개만 짙게 끼었다. 배가 출발하기 30분 전에 멀미약을 챙겨 먹었다. 가을에 잠시 하카다에 다녀 왔을 때 파도가 높아서 심하게 멀미를 한 기억이 아직 있어서였다. 원래 멀미약을 챙겨 먹는 성격이 아니지만. 생수 한 병만 챙겨 나와서 수속을 기다렸다. 이런 개인 여행의 경우에는 수속을 담당자가 대신해주는 경우와 직접 해야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후자를 더 좋아한다. 약속 시간보다 매번 일찍 나오는 데도, 꼭 약속 시간에 늦고- 심지어 빠듯하게 나오는 사람들이 매번 있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배를 타야 하는 시각이 9시 15분인데 수속이 끝나서 티켓을 받은 시간이 10분. 출국 심사를 하고 나니 면세점에서 산 물건을 수령할 시간 정도밖에 없었다. 면세점에서 뭔가 살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좌석이 2층이라는 것이었다. 멀미는 2층의 경우가 훨씬 덜하다. 배 안에서 면세품을 수트케이스에 넣어 버리고 좌석에 앉았다. 창가의 자리였다. 앉은지 얼마 안되어서 배가 출발하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멀미약 때문인지 금방 잠이 쏟아졌다.

배가 출발한지 한시간 반 정도가 지나서 눈을 떴다. 슬슬 매점이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코비의 매점 운행시간은 30분. 캔커피를 사러 매점으로 내려가서, 던킨 도너츠를 하나 사서 올라왔다. 12시 30분에 도착해야 할 배는 최근의 사고 때문인지 천천히 운행한 결과, 30분 가량 늦게 항구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텐진으로 출발. 텐진에는 내가 일본에서 먹어 본 라면 중 가장 맛있었던 ‘잇푸도(一風堂)’의 본점이 있다. 텐진에서 버스에서 내려 본 것은 호텔을 찾아갈 때 뿐이고, 이번에 가는 가게는 지도도 조금 모호해서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혀 다른 방향에서 헤매다가 겨우 찾아오는 길에, 텐진의 첫 번째 목표지이기도 한 ‘아란지 아란조’의 가게를 발견했다. 조그만 가게이지만 일단은 짐도 많고 해서 점심을 먹고 난 후 호텔에 일단 갔다 돌아오기로 했다.

그렇게 아란지 아론조를 지나 잇푸도의 본점.


잇푸도는 주방을 포함해 점원들 대부분이 20-30대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맛을 끊임없이 개발한다는 것이 잇푸도의 모토라고 한다. 고객들도 대부분 젊은 층이다.

본점 한정의 라멘도 있었지만 아는 맛을 택했다. 약간 깔끔하고 매콤한 맛인 ‘아카마루’의 런치 셋트는 라면 700엔에 100엔이 추가되는 대신 하카다의 명물인 ‘한입만두’ 5개와 밥이 딸려 나온다. 밥은 흰밥과 찻슈밥중에서 선택. 찻슈밥을 골랐다. 맛은 변함없이 그 때와 똑같이, 진한 국물인데도 뒷맛이 깔끔하다.

제일 먼저 찻슈메시. 라면의 고명으로 얹는 찻슈에 소스와 김을 뿌린 것 뿐인데 꽤 맛있다. 공기밥 정도의 그릇이다.
아카마루. A모 군이 '여태 먹어본 것중에 가장 맛있는 라면'이라고 칭한 바 있는데, 나도 그렇다. 깊은 국물맛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찻슈를 추가할 수도 있지만 가장 베이직한 맛이 좋아서 항상 그대로 시킨다.

그리고 일단 짐을 맡겨 두러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의 방은 운 좋게 가장 안쪽 방. 안쪽 방은 창이 넓게 두 면에 걸쳐 있어서 밝고 시원하다. 겨울이라면 약간 춥게 느껴질 지도 있지만 지금 계절엔 딱 좋다. 가운데 있는 것이 수트케이스. 강아지 인형을 달아 놓은 건, 아주 평범한 18인치 수트케이스라서 사람들이 헷갈려 하기 때문이다.
볕이 잘 드는 창가. 앞쪽 탁자에는 종업원이 미리 무선랜용 셋트를 갖다 놓았다. 예약할 때 부탁했더니 미리 챙겨놓은 모양. 체크아웃할 때 돌려주면 된다고 한다. 사용료는 무료.

방에 수트케이스만을 놓아 두고 다시 텐진으로 돌아와 아란지 아란조로 들어갔다.
가게 이름은 MILK. 귀여운 팬시 브랜드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장난스럽고 심술꾸러기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와루모노'다.  조그만 방 하나 정도의 가게였지만 좋아하는 캐릭터의 물건이 가득한 가게는 들어오는 순간 표정이 풀어지는 행복한 공간이었다. 주인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일본인 특유의 웃음을 띄우면서 어디에서 왔느냐 물어본다. 한국에서 왔단 말에는 어떻게 이 캐릭터를 알았느냐며 놀란다. 친구가 좋아해서 알게 되었다고, 그 중에서 ‘와루모노’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니 신기한 듯이 이것 저것 말상대를 해 주었다. 원래 인터넷 쇼핑몰에서 살 물건은 정해 놓고 온 길이지만 스탬프라든가 주머니라든가를 직접 보니 또 맘이 흔들린다.

주인 아주머니는 포인트 카드를 만들어서 도장을 찍어 주고는, 꼭 한 번 더 와달라며 웃고, 서비스로 스티커를 하나 끼워 주었다. 기분 좋게 가게를 나오는 등 뒤로 아주머니가 인사를 해 주었다.

하카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하카다에 흐르는 강과, 그 강 주변에 조성된 푸른 녹지, 그리고 곳곳에 있는 공원이 나는 맘에 든다.
공원의 이름이 '수상공원' 이다. 어울리는 이름이다.

다음 목적지는 하카다 리버레인. 극장인 하카다좌나 하카다 미술관 등이 있는 몇 개의 건물을 통털어 리버레인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5층에 있다는 아트리움 가든에 올라갔다. 실내에 유리 천장과 벽을 사용해서 만들어놓은 정원은 아늑했다.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조용히 앉아서 차를 한잔 마시면서 음악을 들어도 좋을 공간이었다.
하얀 돌에는 각국의 언어로 이런 저런 단어가 적혀 있었다. 딱히 어떤 단어로 정해진 것은 아닌듯, 우리 나라 말은 '조약돌' '시냇물' 등이 보인다. 조형적으로 예쁜 글자를 고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 곳을 지나서 내려왔다.

하카다 레인 앞에서 스와다진자까지 이어지는 길은 하카다의 전통적인 쇼핑가로, 아케이드가 만들어져 있다. 천천히 걸어 스와다진자에 도착했다.

하카다의 전통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다.

방송국의 지원으로 거대한 장식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축제가 벌어지지 않는 지금도 찾아와 두 손을 모은다. 일본의 믿음은 그렇게 생활 가까이에 있다. 거리 거리마다 오래된 신사가 있고, 그 곳에서 작은 부적을 사고, 수령이 오래 된 나무를 또 신령시 해서 섬긴다. 그 마음 자체는 우리 나라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산책이 끝나는 길에서 또 조금 더 내려오면 ‘캐널 시티 하카다’가 나타난다.


하카다에 오는 사람이면 거의 대부분 들를 곳이다. 오늘도 운하 앞의 무대에서는 간이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건물 안에 운하를 끌어들인 건축은 키타큐슈에도 이후 응용되었지만 매번 올 때마다 이곳의 풍경은 인상적이다.

무인 양품에 들러 기본 면 가방(99엔)을 하나 사고, 스탬프로 글자를 찍어 보았다. 책을 넣기엔 무리일 듯 싶었는데 사이즈가 큰데다가 메어 보니 의외로 편안해서 맘에 들었다. 이것 저것 사고 싶은 것을 다 살 수도 없고 해서 열심히 고민해서, 꾸욱 참는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가게다.

슬슬 저녁시간이 되어 5층의 라면 박물관에 올라와 츠케멘을 시켰다. (츠케멘은 소스에 찍어먹는 라면이다.)


가장 맛있는 라면을 먼저 먹어서 보통의 라멘으로는 실망할 것 같아서 일부러 츠케멘을 시켰지만-. 면의 쫀득함이나 부드러운 맛이 꽤 좋았는데도 조금은 아쉽다. 하카다 라면은 보통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에 가는 면을 사용하지만, 츠케멘(국물에 찍어먹는 면)은 면을 굵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가게는 우리 나라의 칼국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굵은 면을 사용했는데 쫀득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좋았다. 하지만 스프 쪽이 조금 느끼한 기분이 된다.

라면 박물관의 전체를 통털어 츠케멘을 하는 가게는 ‘이치야’ 뿐. 그것도 평일 한정이다.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츠케멘이 도쿄에서 유행인 것에 비해 하카다에서는 별로 유행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돈코츠 라멘의 성지라 불리는 하카다의 자존심인가 생각도 해 보지만 다 모르는 사람의 짐작일 뿐이다.

캐널시티 안에 극장이 있어서인지- 익숙한 마네킹이 서 있다. 아니 선장님 여기 왜 계십니까. 하긴 한국에도 오늘 개봉했겠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해는 저물고, 저녁의 캐널시티의 명물, 분수가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있는 듯이 움직이는 분수 앞에서 조금 앉았다가 일어났다. 이젠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숙소 근처에 있는 북오프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책을 찾아 보았다. ‘ありがとう、だいごろ’도 있고 ‘博士の愛した数式’도 발견. 게다가 ‘キノの旅’의 작가가 쓴 ‘学園キノ’도 찾을 수 있었다. ‘선생님의 가방’을 못 찾은 건 아쉬웠지만 ‘蟲師’를 사러 서점에 가서 새책을 사기로 마음을 정했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1층에서 팔고 있는 망고 푸딩을 하나 사갖고 돌아왔다. 여행을 와 있을 때엔 조금 느슨해져도 좋다는 기분이 된다. 심해서는 안되겠지만.

어째서 우리 나라 망고 주스는 망고 맛이 안 날까.... 일본의 망고 푸딩을 먹으면서 그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먹기 힘들다. 통조림은 너무 달다. 고가라는 애플망고야 먹을 수 없다 하더라도.

내일은 유후인에 간다. 온천물품으로 수건과 클렌징 제품을 챙겨 가야겠다. 썬크림을 발랐는데도 드러난 손등에 자외선 알러지 증상이 보이고 있다. 내일은 더 자주 발라줄 수 밖에 없겠다.

2007/06/13 10:05 2007/06/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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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loj analogico online 2018/08/23 02:01 댓글수정 또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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